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벌지 전투 (문단 편집) === 정체된 공세 === 하지만 히틀러의 망상과 달리 당시 서부 유럽 전선 사령관이던 아이젠하워 원수는 중간 협의 과정 다 씹어먹고선 부대를 신속하게 재배치시켰으며, 특히 자신의 재량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미군 소속 공수부대인 82사단을 생비트로, 역시 다른 공수부대인 101사단을 바스토뉴로 (트럭에 탑승시켜서) 급파했다. 이어서 뒤늦게 정신차린 연합군이 맹렬히 대응하기 시작하자 독일군의 진격은 서서히 둔화되었다. 한편으론 초창기 전선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많은 연합군 병사들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포로가 된 미군의 수는 7,500명 이상[* 영문 위키피디아의 내용에 의하면 최종적으로 2만 3,000명이 포로 및 실종 상태로 되어있다.]이었다. 벌지 전투에서 수 개의 사단급 부대가 붕괴되었고 다른 사단과 통폐합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군 106보병사단과 99보병사단.[* 특히 제99보병사단은 사단 자체가 배치된 지 얼마 안 되어 대부분 신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독일군의 초기 공세를 전면에 받아서 90%의 사상자를 냈다. 취사병까지 총을 들고 싸웠다고.] 이 와중에 12월 17일 말메디에서 [[요아힘 파이퍼]]가 지휘하는 [[슈츠슈타펠]] 파이퍼 전투단 병사들이 사로잡은 미군 포로들에게 뚜렷한 이유 없이 [[기관총]] 사격을 가하여 대부분의 포로들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말메디 학살]]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